성북동 글방 희영수

사형 지켜볼 용기 _ 2월 선정도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본문

독서 기록

사형 지켜볼 용기 _ 2월 선정도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긴개 2025. 2. 22. 14:48

 

 

 

사형 지켜볼 용기

25.2.1.

 

 

 이 책을 처음 펼칠 땐 완전히 흥분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소리쳤다. 이 새끼 완전히 윤석열이랑 똑같네! 이재명도 이런 식으로 당했잖아! 조국은 가족까지 잡아가놓고 나경원 도망치는 건 봐주는 사례가 이 나라에도 있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 하는 소리도 완전 똑같잖아! 민주주의를 도입했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나라들이 왜 비슷한 꼬라지를 겪고 있는지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점차 차분해졌다. TBS도 이렇게 당했지. 폭동 일으켜 놓고 경찰 책임이라고 하는 사람도 어디에나 있구나. 그래도 이재명보다 윤석열이 낫다고 하는 새끼들처럼, 그래도 사회주의자보다 히틀러가 낫다고 말하는 새끼들이 프랑스에도 있었어. 우리나라만 겪은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만, 애국청년뭔쌍놈들만 미친 게 아니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마치 평행세계의 같은 나라처럼, 시간과 장소만 다른 채 거의 동일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내가 ‘우리’라고 여기는 족속들은 왜 그 나라에서도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는가. 넌더리난 채로 씨부렁거렸다. 우아하고 싶지만 정치판을 들춰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사형제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사형 집행 장면을 끝까지 지켜봐야한다고 썼다. 만약 임산부가 그걸 보고 유산하면 어떡하냐고 물어온다면, 그것마저 사형제를 찬성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할 만큼 사형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에코의 에세이를 떠올리며 결심했다. 나는 윤석열이 사형 당하는 순간에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겠다. 농담이 아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당연히 알고 있다. 죽음이 엔트로피 법칙 상 기본값이고, 한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과 사랑이 필요한지 헤아리면 절로 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윤석열은 박정희,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죄 없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다. 살인미수는 무죄가 아니다. 게다가 극단적 인명경시와 계획적 범행, 내란이라는 중대범죄가 결합되었으며 한 국가의 수장이 자신의 권력을 휘둘러 살인을 도모했으므로 그 형량은 사형 혹은 종신형 뿐이다. 종신형을 받았다가 무책임하게 사면되어 ‘어린 것들이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같은 소리를 짖다가 제명에 죽은 전두환 같은 사례를 더는 용납할 수 없다. 윤석열은 사형당해야 한다. 나는 그 순간을 똑바로 지켜보겠다. 목숨의 가치를 가늠하며 눈물 정도는 흘려줄 수 있다. 

 책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옆으로 샜지만, 모든 장의 모든 문장을 인용하고 싶으므로 좀더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차분히 써보리. 올해 백권주행 통해 읽는 책들이 전부 우위를 가릴 수 없게 좋다. 

 

 


 

 

 

 

민주주의의 뜻 누가 모르냐

25.2.8.

 

 단어의 뜻을 모르고 발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어의 오용이 요즘처럼 심각하게 사회를 갈라놓는 때가 있었던가. 물론 우리는 맥락에 부적합한 단어를 저도 모르게 뱉기도 한다. 그것은 때때로 웃음을 유발한다. 최근 간식을 건네주던 직장 동료의 경우가 그랬다. 동료가 내게 틴더 초콜렛 좀 먹어보라고 했을 때 나는 뒤를 돌아보다말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이와 함께 있던 보호자들이 들었다면 기겁했을지도 모른다. 갓 사회인이 된 또다른 동료는 회의 중 거마비 책정에 대해 듣고 '검화비'가 뭐냐고 물어 회의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는 말할 때마다 필요한 모든 단어의 사전적 뜻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며, 어떤 오용의 경우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문제가 되는 오용은 아예 단어의 뜻을 반대로 이해한 경우이다.

 

 바로 '민주주의'가 그렇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사회에 산다고 해서 저절로 민주주의 가치를 깊게 이해하고 수호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인간을 이루는 원소, 유전자의 작동 원리 등을 저절로 이해할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동원해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과 출판을 검열하며 일반인을 마음대로 체포하려 했던 행위에는 민주주의를 뒤엎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평화적으로 넘겨주는 규범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말한다.

 

p.82-83

 '헌법 조항을 부당하게 사용할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가령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 대부분에서는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그 기간에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 조항은 역시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내의 규범에 따라 적용을 받는다. 즉 정치인들은 그 조항을 주요 전쟁이나 국가적 재앙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급박한 상황에서만 유리를 깨고 비상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정부가 반복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당한다.

 그러나 독재를 꿈꾸는 지도자는 헌법이 자신에게 보장한 그러한 권력을 남용하려는 유혹을 종종 느낀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수호하려는 사람에게도, 그 반대의 목적을 지닌 사람에게도 지침서가 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가 되고 싶다면 책에 실린대로 1.승패를 떠나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고, 2.정치적 목적을 지닌 폭력에 반대해야 하고, 3.반민주주의 세력과 확실하게 관계를 끊으면 된다. 반대로 윤석열과 국민의힘, 극우 파시스트들은 책에서 반민주주의 행위로 규정한 모든 예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들의 내란 행위에는 독창성이 전혀 없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애국자가 아니다. 그저 잃었다고 착각하는 자신의 이득을 되찾으려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이며 반민주주의 범죄자일 뿐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똑같은 행위가 이미 다른 독재 국가에서도 고스란히 행해졌다.

 

 내란범들이 외치는 민주주의의 뜻은 대한민국 헌법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민주주의의 뜻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그들에게 국어 시간이 필요하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는 대로 행할 수 있도록, 선제적 앎의 시간이 절실하다.

 

 

 


 

 

 

 

미국 너네가 고생이 많다

25.2.15.

 

 미국인의 고충을 위로하고 싶어진 건 처음이다. 자타공인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합중국의 속이 어떻게 곪아있는지,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소수가 어떻게 모두의 발목을 잡는지, 더불어 잘 살기가 왜 이리도 어려운지, 누군가 미국인이라고 한다면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이 사태를 책임지지 못하면 우리에게도 불똥이 튄다. 그 불똥이 너무 커서 우리나라의 한쪽이 다 타버릴지도 모른다. 트럼프 떠안고 괴로운 건 알겠지만, 세계 최초로 헌법을 성문화한 민주주의의 성지라고 으스대고 싶다면 그 타이틀 뺏기기 전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좀 내주길 바란다. 이쪽도 여유 없긴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러나 나아가야 하므로ᅠ

25.2.22

 

 

 부유한 민주주의와 오래된 민주주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2021년 1월 6일, 미국 대통령이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폭도들을 선동해 국회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하자 스티븐 레비츠키는 충격에 빠진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헌법을 성문화한 나라인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반민주적이고 위헌적인 사태가 일어났을까. 레비츠키는 미국인에게 외면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신성시하는 미국 헌법에 허점이 있고,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민주주의가 위협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종차별적 정책에 앞장섰던 민주당이 1964년 이후로 다인종 민주주의 전략을 세우자 공화당은 백인-기독교-시골-보수파를 공략해 인종적으로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소수파가 되었다. 트럼프는 인종적 분노를 이용해 반민주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주의를 은밀히 무너트리는 '표면적으로 충직한semi-loyal' 민주주의자들로, 트럼프와 함께 선거를 부정하고 폭력을 주도하며 독재를 옹호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공화당은 전체 미국 인구 비율에서 소수파이다. 그러나 그 소수는 미국 다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민주주의를 무너트리고 있다. 미국인이 존경하는 헌법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상원제, 사법심사, 선거인단, 필리버스터와 같은 반다수결주의 제도들은 소수파인 공화당이 미국 대다수 시민의 의사를 묵살하고 극단적 반대로 끌고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이는 미국이 더 평등하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것을 헌법을 악용하여 막는 반민주적 행태다.

 

 다인종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미국은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들을 고립시키고 물리쳐야 한다. 헌법적, 선거적 개혁이 필요한 때가 왔다. 투표권을 확립하고 다수의 선택이 선거 결과가 되어야 하며 그 다수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 당장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라고 치부할 순 없다.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침묵이다.' 공적 논의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변화를 이끌어낸다. 사람들이 공론화하고 사회 운동을 이끌 때, 미국의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고 개혁을 논의할 때, 어느 영웅이 아닌 우리 자신이 그 주체가 될 때 이 모든 소망은 현실이 될 것이다.